월간 보관물: 2011 7월

MACOS ADAMAS 09007

내일 아침이면 20년 가까이 쓰던 안경을 벗는다. 각막도 레이저로 한꺼플 벗는다.
눈으로 보여졌던 건 각막만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일 쓸모없는 허상도 한꺼플 벗겨져버릴테니까.

아이리스

맥주캔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텅빈 눈으로 잠시 시간을 멈춰세웠다.
회색빛 세상은 여전히 거친 숨만 몰아쉬며 뭐가 그리 바쁜지 달빛을 따라 쉼없이 날개짓을 해댄다.
슬픔이 깃든 빗방울은 날 안아주지 않았지만 스치는 바람에서 옅고 희미한 안도를 맡을 순 있었다.

홀리듯 뒤돌아본 날개는 빛은 바랬지만 찰나의 바람을 머금기엔 충분했다.

날 수 있을까.


아니, 난 갈 곳이 없었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
눈물에 적신 붓을 감고 한참을 허공에 그림을 그리다 일어섰을땐,
한갑 가득 들어있던 담배가 몇가치 남아있지 않았다.

붙잡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머무르지 않았고,
결국 눈동자는 검붉게 시들어버렸다.

추억, 기억, 상상

#얼음

무슨일로 다퉜는지도 모를만큼 오래전 이야기다. 시무룩해진 그녀는 무거운 공기를 없애려 뭔가를 해야겠다 생각했는지 아무말없이 냉장고를 열어 반찬통과 물병등을 꺼내더니 작은 쇠붙이로 냉장고한켠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쿵.. 쿵.. 여린팔로 아무리 쳐도 얼음은 쉽게 깨지지 않았고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연장통에서 망치를 빼내서 그녀에게 한번 보여주니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쿵! 쿵! 그래도 남자라고 얼음은 훨씬 쉽게 조각났고 나도 그순간은 바로 전 상황은 잊어버리고 괜히 신나서 망치를 휘둘러댔다. 과장된 몸짓에 결국 날카로운 얼음조각에 손을 즈윽 베이고 말았다.

엇.

베인 손가락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고 마치 습관처럼 뒤돌아서 손가락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눈이 동그래진 그녀는 괜히 힘쓰다가 다친걸 본게 한두번이 아니라는듯 피식 웃었고 나도 따라서 웃어버렸다.

..미안해.

방금전까지 웃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때도 손이 베였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했다. 난 참 못됐다.

#휴지

개 싫다 털날리고 신경쓰이고 얼마나 불편해.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불효자 의견이 우선이였다. 휴지를 데리고 오는날이면 언제나 털날린다며 싫어하셨지만, 다음주에 다시 내려와야할 일이 생겼고 휴지와 KTX를 타려면 많은 짐을 들어야했기에 한 주 맡겨놓고 올라왔다. 일주일 뒤 찾아간 휴지는 포동포동 살쪄있었다. 어머니가 TV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옆에 앉았다. 계속 싫다싫다 하시면서도 한손으론 계속 머리를 쓰다듬고 계셨다. 친구 만나러 나갔다 온동안 동생이 말끔해진 휴지를 안고 방금 있었던 대화를 얘기해주는데 계속 웃음이 났다.

휴지는 목욕 언제한대니
몰라 오빠가 일주일마다 시켜줬을껄
목욕시켜줘라
지금은 1시니 내일 일어나면요
지금 해줘 목욕하고 개운하게 자라고

욕조에서 목욕시키는걸 뒤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니는 답답하지 않겠냐며 문을 열어놓으셨댄다. 적적했던 넓은 집에 반기는 이가 있으니 외로움만큼 금새 정이 들었나보다.

#라식

저번주에 라식검사를 받고 덜컥 수술날짜를 정해버렸다. 예전에 봤던 수술의자에서 의사가 안겨주던 하얀 곰인형이 눈앞에서 내게도 안긴다. 난 뭐든 눈 근처에만 오면 질끈 감아버리기에 레이저가 실수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의사의 실수로 눈이 보이지 않게된 나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