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1 8월

Audio Room


좁았던 원룸에 살다가 넓은집으로 오고나니 가구에 눈이 간다. 최대한 운반하기 쉽고 작은걸 골랐던 소품들은 이제 크기가 무슨 대수냐. 줄자로 슥슥 길이만 재서 샥 넣으면 되는걸. 오래된 책상을 다 치워버리고 커다란 책장을 두 개. 어디서 봤던건 있어서 한칸엔 화분도 넣는다. 빨간책상과 의자 서랍장 뒤로 오디오장비들을 모두 모아두니 기분까지 그루브해져서 베이스를 한참을 잡고 있었다. IKEA의 빨간 서랍장은 조립하면서 감동했다. 설명서엔 아무런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난이도로 어렸을적 레고를 조립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재밌게 조립했다. 여분의 나사가 없는것조차 불안이 아닌 신뢰를 더한다. 잔뜩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올라오니 유난히 낡은 벽지가 눈에 거슬린다. 조금 선선해지면 빨간 벽지를 둘러야지.
인테리어에서 일하는것도 재밌겠다 잠시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개발자가 아니였다면 PC는 오락기로만 쓸 수 있었을텐데. 디자인을 안해봤다면 예쁜 것과 그렇지 않은것 딱 이 두 가지로만 나눌수 있었을텐데. 절대 재밌다고 깊게 들어가지 말아야지. 그냥 즐기기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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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km, 해남라이딩

1박2일 일정으로 200km를 달린다고 했을땐, 제주도 라이딩을 떠올리며 마냥 신났다. 50km까지도 그냥저냥 탈만했는데 80km쯤엔 녹초가 되버렸고 내가 가는건지 지구가 돌아서 앞으로 가는건지 쓰러질듯 말듯 겨우 도착했다. 다음날엔 취한듯 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몸에, 걱정에 또 걱정만큼이나 전날 6시간 걸렸던 길을 10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중간에 69가 자전거가 고장나 친구차를 불러 돌아가는데 너무 부럽더라. 8시간을 달린 뒤 Hizz에게 SOS를 청했으나 역시 평일이라 모두 바빠. 넓게 펼쳐진 평원을 향해 “내가 왜 가자고 했을까!!” 연신 외쳐댔다. 다음 장거리 라이딩은 경주로 가잰다. 편도만 300km. 절대안가. 해남엔 세가지 도로가 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오르막길, 분명히 갈때 오르막길이였는데 돌아올때도 오르막길.

장성 라이딩


광주에서 장성.
왕복 58km.

말도 안되게 높은 언덕길이 있었고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 비까지 내렸지만 완주한다는 작은 목표달성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동료들이 내가 제주도 갔을때와 많이 달라졌다며 좋아한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인내심이 더 늘어난건 확실히 느껴진다. 귀를 스치는 바람의 치찰음에 중독될려고 한다.

프리랜서

회사를 그만둔 실감이 나기도 전에 제주도 라이딩을 다녀왔고, 다녀오자마자 서울에 일주일동안 상주알바를 갔다. 짧은 기간이였지만 오랜만에 개발다운 개발을 해서인지 재밌었고 무엇보다 좋은 형과 친구들을 얻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난 첫인상을 매우 믿는 편이다. JW님이 혈액형을 따지는것처럼, 못생기고 잘생기고를 떠나서 그사람 얼굴만 보면 성격이 어떨지 집안이 어떨지 대충 예상이 갔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후에 얘기를 시작하는 못된 습성 때문에, 얼굴만으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은 내가 피해버렸기에 얘길 할 기회가 적었다. JW님도 친해지지 못했던 사람들에 속했었지만 일주일동안 함께 지내며, 전 회사에서 누구와도 하지못했던 고민과 속내들을 밤새도록 얘기하며 정말 많이 친해졌다. 다른 사람들과도 나중에 부산에서 함께 보자는 약속을 했다. 함께 일할때조차 못가봤던 SS님, SM님 집에도 가보고 조금 더 친해진 SJ님 회사에서도 자며 내내 머릿속엔 즐거움이 떠나질 않았다. SS님 SM님 SJ님 JS님 감사요. -전부 S- 광주에 내려와 아는 모든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마음편히 지낼수 있다니. 오전엔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오후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가는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대할 때 조금 더 마음을 열자는 다짐을 해본다. 의사도 그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라고. 처음 들었을땐 내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경험이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막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 일이 즐거워졌다. 덕분에 내일도 모레도 주말까지도 빽빽한 일정이 생겼다. 오히려 회사를 다닐때보다 더욱 바쁘고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프리랜서로 사는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SM님이 추천해줬던 인도에 한두달일정으로 길게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벌레 이야기에 상당히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동기를 만들어 주기엔 충분했고 여유도 충분하다.

뚜르드제주 #2


서로에겐 즐겁게 대했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가진 이들의 외롭고 힘겨운 여행이였다.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비슷한 남자들의 여행이였기에 한참을 웃으며 떠들다가도 금새 우울해져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먹먹해져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거나 구름이 지나가는걸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둘째날은 너무 힘들어서 콜밴을 불러 집으로 가려고까지 생각했고 넷째날 시야가 어두워지고 숨이 턱턱막혀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기도했다. 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건 마음이였다. 팀에게 폐를 끼치는게 싫었고 저질체력에 자신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울해지지 않으려 페달을 열심히 굴려보아도 몸이 버티지 못할때는 언제나 마음까지 같이 힘들었다. 나를 가로막았던건 아득한 안개에 덮인 오르막길이 아닌 아른거리는 후회였다. 이겨내야해. 버텨야해. 이건 오히려 즐거움이잖아. 입술을 깨물고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간 친구들 앞에선 언제나 긍정을 잃지않았다. 트레일러를 끌지않은 미안함때문이기도 했고 농담을 던지며 마음을 가볍게 하니 작은 농담에도 한참을 웃었다. YK는 생존을 SH형은 트레일러를 나는 긍정을 EJE는 나를 맡았다. 하지만 우울증보다 심하다는 조울증이 어떻게 생기는지 왜 생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목포로 가는 배 안에서 참 아쉬웠다.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나니 이렇게 정해진 고통은 고문이 아닌 오히려 즐거움에 가까웠다. YK가 쓴 여행기를 보고 사람들은 제주도까지 가서 회 한점먹지 않고 힘들게만 다녀왔다고 했지만, 눈으로 보이진 않아도 다들 한층 더 성숙해졌으리라 믿는다.

후회. 물론 후회한다. 이번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또한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게 아닌 모든것을 포용하는 더욱 성숙된 사람이 되어서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을때쯤엔 과거에게,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용서를 빌 준비가 될 것같다.

GIANT SCR3


친구들이 50만원이 넘는 자전거를 산다고 할때, 네놈들이 광주에 내려가더니 미쳤구나 생각했다. 인터넷 신청하면 주는 자전거 타면됐지 무슨 소라급 울테그라급을 따져? 야단쳤는데 미니벨로를 타고 땀에 흠뻑젖으며 20km정도를 따라갔다가,

어느새 나도 가지고 있네?

뚜르드제주 #1


제주도에 누가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댔나.
모기와 햇빛과 오르막길 뿐이더라.

부족했던 인내심과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힐려는 여행이였다.
참자. 이겨내자. 인내. 인내. 되내이고 되내이면서도
평소엔 앉아있지도 않을 아스팔트바닥에 대자로 뻗어있길 수십차례.

부족했던 체력에 폐만 끼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였지만, 같이 갔던 3dot멤버들 모두
힘들때 대신 트레일러를 끌어주고 뒤쳐지면 기다려줘서 서로 도우며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